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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명절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 12채반의 전보다 소중했던 가족의 온기

 

 

어릴 적 우리 집은 명절만 다가오면 온 집안이 비상 체제에 돌입하곤 했습니다.

묵혀두었던 온갖 그릇이란 그릇은 모조리 꺼내어 반짝반짝해질 때까지 깨끗이 닦아야 했고, 고소한 기름 냄새 속에서 부쳐내는 전은 무려 12채반이나 되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허리가 끊어질 듯한 명절 노동이 당연했던 어느 종갓집의 딸이었습니다.

딸 넷과 운명에 순종하는 종부이신 어머니는 13개의 상을 차리기 위한 끝없는 노동을 3일간 이어가셨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명절 일손 돕기에 어린 마음에도 참 많이 지쳤던 기억이 납니다.

전을 부치다 말고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나는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는 위치에 꼭 있을 거야!”

 

 

 

직접 만든 노릇노릇한 명절 전

 

직접 만든 노릇노릇한 명절 전

 

고단함 뒤에 숨어 있던 달콤하고 따뜻한 기억들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날의 명절이 힘들고 싫기만 했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고단했던 일거리 뒤에는 언제나 달콤하고 감격스러운 추억들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절 일감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면 다 함께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극장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영화 한 편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던 시간, 그리고 차분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고궁을 나들이하던 길은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따스하게 물들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꼭 설날이 아니더라도 명절이 되어 반가운 친척 어른들이 찾아오시는 날이면 어린 저희들의 주머니는 묵직해지곤 했습니다.

어른들께서 손에 쥐여주시던 두둑한 용돈 봉투를 받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며 뛰놀던 어린 날의 기억은 여전히 제 삶의 소중한 안식처로 남아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던 추억의 장소, 고궁 나들이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을 거닐며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

돌이켜보면 그때의 행복은 특별히 비싼 것을 누려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던 추억의 장소 고궁 나들이 (경복궁,덕수궁,창경궁)

 

 

12채반의 전보다 소중했던 '함께함의 온기'

 

돌아보면 그 시절 힘들었던 우리 종부 어머니와 딸 넷을 다시 묶어주고 다독여주었던 건 화려한 차례상이나 거창한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다 함께 영화를 보며 웃던 시간, 고궁을 거닐던 시간, 어른들의 따뜻한 손길과 용돈 한 닢에 담긴 정, 그리고 고된 명절 일 속에서도 온 가족이 한곳에 모여 시끌벅적하게 부대끼던 ‘함께함의 온기’였습니다.

이제는 그 시절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고 벗어나고 싶었던 시간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이 그리워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힘들었던 순간보다 그 안에 함께 있었던 사람과 따뜻했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느끼는 ‘현타’는 어쩌면 내 삶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현실과 내가 기대했던 삶의 모습 사이에서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 현타가 오는 이유, 내 인생이 실패해서가 아닙니다


거창한 물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흘러 소가족화와 개인주의가 깊어진 요즘의 명절을 바라봅니다.

과거에 비하면 고된 명절 노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푹 쉴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마저 함께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해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명절이 그저 쉬는 날이나 의무적인 이벤트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다시 예전처럼 12채반의 전을 부치고 13개의 상을 차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제는 굳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대도 많이 변했고 풍속도 간소화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형식보다 본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절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석이 지닌 진짜 본질은 거창한 차례상이나 화려한 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곁을 지키며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연대’에 있으니까요.

 

 

올해 추석에는 마음을 나누어보세요

올해 추석은 물질적인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부모님의 사랑에 마음을 다하고, 작은 행동 하나라도 따뜻하게 건네보는 것입니다.

마음을 잇는 추억 이야기

빛바랜 옛날 사진첩을 함께 열어보세요.

어린 시절 명절에 나들이 갔던 이야기, 그때 입었던 촌스러운 패션 이야기만 꺼내도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정성을 담은 안부

형식적으로 복사해서 보내는 단체 문자 대신,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적은 진심 어린 몇 줄의 메시지나 따뜻한 안부 전화 한 통을 건네보세요.

가벼운 나들이와 깊은 대화

맛있는 식사를 마친 뒤 가까운 고궁이나 공원을 함께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동안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는 시간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마음의 안식처로 돌아가는 길

“결혼하면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철없이 외치던 어린아이였던 제가 어른이 되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정작 그리웠던 건 고단함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고단함 속에서도 온 가족이 모여 나누었던 따뜻한 정과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명절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녀, 조부모와 손주처럼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고 서로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왜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족과 세대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 “세대학살”이라는 말이 던지는 질문


올해 추석에는 무엇을 남길까요?

이제는 굳이 전 12채반을 부치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명절의 모습도 달라져야 하니까요.

하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올해 추석은 남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한 부담스러운 명절이 아니라, 서로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고 따뜻한 추억을 한 겹 더 쌓아가는 ‘정성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명절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제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힘든 노동이 아니라,

그 노동이 끝난 뒤 온 가족이 함께 웃었던 시간입니다.

가장 소중하고 진정한 선물은 언제나 화려한 포장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과 ‘진심 어린 관심’ 속에 놓여 있으니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이번 추석에는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12채반의 전보다 소중했던 것은 결국, 함께했던 사람들의 온기였습니다.

🌕 온기 가득하고 편안한 추석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