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은 명절만 다가오면 온 집안이 비상 체제에 돌입하곤 했습니다. 묵혀두었던 온갖 그릇이란 그릇은 모조리 꺼내어 반짝반짝해질 때까지 깨끗이 닦아야 했고, 고소한 기름 냄새 속에서 부쳐내는 전은 무려 12 채반이나 되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허리가 끊어질 듯한 명절 노동이 당연했던 어느 종갓집의 딸이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명절 일손 돕기에 어린 마음에도 참 많이 지쳤던 기억이 납니다. 전을 부치다 말고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나는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는 위치에 꼭 있을 거야!"

고단함 뒤에 숨어 있던 달콤하고 따뜻한 기억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날의 명절이 힘들고 싫기만 했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고단했던 일거리 뒤에는 언제나 달콤하고 감격스러운 추억들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절 일감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면 다 함께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극장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영화 한 편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던 시간, 그리고 차분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고궁을 나들이하던 길은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따스하게 물들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꼭 설날이 아니더라도 명절이 되어 반가운 친척 어른들이 찾아오시는 날이면, 어린 저희들의 주머니는 묵직해지곤 했습니다. 어른들께서 손에 쥐여주시던 두둑한 용돈 봉투를 받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며 뛰놀던 어린 날의 기억은 여전히 제 삶의 소중한 안식처로 남아 있습니다.

12 채반의 전보다 소중했던 '함께함의 온기'
돌아보면 그 시절 힘들었던 우리를 다시 묶어주고 다독여주었던 건 화려한 차례상이나 거창한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다 함께 영화를 보며 웃고 고궁을 거닐던 시간, 어른들의 따뜻한 손길과 용돈 한 닢에 담긴 정, 그리고 고된 명절 일 속에서도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시끌벅적하게 부대끼던 '함께함의 온기'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소가족화와 개인주의가 깊어진 요즘의 명절을 바라봅니다. 과거에 비하면 고된 명절 노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훨씬 편안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푹 쉴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마저 함께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해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명절이 그저 쉬는 날이나 의무적인 이벤트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이지요.
거창한 물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제는 굳이 전 12 채반을 부치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추석이 지닌 진짜 본질은 거창한 차례상이나 화려한 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곁을 지키며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연대'에 있으니까요.
올해 추석은 물질적인 부담을 내려놓고, 이런 소소한 마음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 마음을 잇는 추억 이야기: 빛바랜 옛날 사진첩을 함께 열어보거나, 어린 시절 명절 나들이 갔던 이야기, 촌스러운 패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추억 놀이가 됩니다.
- 정성을 담은 안부: 형식적으로 복사해서 보내는 단체 문자 대신,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적은 진심 어린 몇 줄의 손편지나 따뜻한 안부 전화 한 통을 건네보세요.
- 가벼운 나들이와 깊은 대화: 맛있는 식사를 마친 뒤 가까운 고궁이나 공원을 함께 걸으며, 그동안 서로 말하지 못했던 고단했던 일상을 가만히 들어주는 시간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 됩니다.

다시, 마음의 안식처로 돌아가는 길
"결혼하면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철없이 외치던 어린아이였던 제가 어른이 되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정작 그리웠던 건 고단함 속에서도 온 가족이 모여 나누었던 따뜻한 정성과 마음이었습니다.
올해 추석은 남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한 부담스러운 명절이 아닌, 서로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고 따뜻한 추억을 한 겹 더 쌓아가는 '정성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소중하고 진정한 선물은 언제나 화려한 포장지 속이 아닌, '함께하는 시간'과 '진심 어린 관심' 속에 놓여 있으니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도 온기 가득하고 편안한 추석 명절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인당 최대 50만 원! 2026 추석 민생지원금 신청 방법 및 지자체 세부 일정 총정리 (6) | 2026.08.17 |
|---|---|
| 2026 추석 민생지원금 신청방법과 대상 총정리 (지자체별 20만~50만 원) (1) | 2026.08.16 |
| M커브의 종말, 그리고 아이를 낳을 용기: 30대 여성 고용률 73%가 던지는 메시지 (1) | 2026.08.06 |
| "뇌 영양제 끊었습니다" 의사가 말하는 돈 안 드는 최고의 뇌 건강법 (7) | 2026.08.04 |
| "붙이면 피부온도 7도 뚝"...연일 40도 찜통더위, 우리가 여름을 버텨내는 슬픈 생존법 (1) | 2026.08.04 |